[Λ] "생활의 발견"

2014. 10. 25. 12:5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 1:15>


사도바울이 자신을 빗대어 표현했던 괴수,그 괴수의 모습을 이 영화에서는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많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모든 영화를 볼 수가 없었고,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작품을 보면서

그래도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영화 감상문 이상의 생각을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보게 되었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은 2002년에 제작되었지만, 너무나도 날카롭게, 적나라하게 인간에 대해 그리고 있어서 보는내내 불편했다.


특히 제목 <생활의 발견>이라고 무덤덤하게 마치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오랜 기간 동안 사람안에 가지고 있는 본성을 ‘발견’이라는 용어로 꼬집어내는 것이 매우 불쾌했다.

불쾌함을 가지고 봤지만, 사도바울이 고백했던 것과 같이, 인간이라면 내재되어있는 본성이기에,

나 또한 영화 내내 마치 망가진 라디오처럼 반복되던 “우리가 인간이 되기는 힘들지만 괴물이 되지는 말자” 라고 말하던 주인공처럼,

나 또한 괴물이 되고 싶지 않고, 괴물로 남고 싶지 않아서 이 영화를 보면서 분석을 하기로 하였다.

어디까지나 전문가적인 견해보다 내가 이 영화를 통해 풀이한 점 그리고 영화를 나의 거울 삼아,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나의 ‘괴수화’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멈추고 싶었다


영화의 시작에서 주인공인 경수에게 한 선배가 이렇게 말을 한다.


“우리가 인간이 되기는 힘들지만, 괴물이 되지는 말자”


이 대사는 영화 내내 계속해서 주인공에 의해 반복이 된다. 마치 망가져버린 테이프처럼 계속해서 한 구간을 재생하는데,

그 구간이 하필 저와 같은 대사와 같았다.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그 어느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듯 했다.

경수가 춘천으로 내려가 오랜 선배를 만나고서 선배에게 다시 이 말을 읇조린다.

그곳에서 선배와 함께 찾은 소양호에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한 “On the Occasion of Remembering the Turning Gate”에서

언급되는 회전문과 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필요로 하게 될 때에 머물고 마치 전설의 뱀처럼 그 사람을 감싸기도 한다.

그 이야기는 그저 흘러가버리지만, 영화의 흐름이 계속되면서 그 뱀은 곧 경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괴물이 되지 말자고 했던 그 말과 다르게 경수는 끊임없이 한 여자를 쫓고 또 쫓는다. 춘천에서 만난 여자, 명숙은 그와 같은 괴물이었고 뱀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탐닉하는 정사 장면 이전에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을 하며 건너가는 모습이 일상의 삶에서의 무단횡단이 아닌

정말 건너서는 안되는 레테의 강을 건너가는 느낌으로 바라보았다.


단순히 ‘정사’라는 것보다 명숙이라는 괴물은 그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사랑해?” 그 사랑에 대한 정의는 경수도 내릴 수가 없다.

경수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그 여자에게 사랑이 아닌 괴물을 느꼈기에 그도 떠났다.

춘천을 떠나면서 나오는 길에 잠시 화면에 비추던 명숙의 사진이 그녀가 경수와 같은 괴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홍상수 감독의 의도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수의 주황색 옷은 참 오묘한 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색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공사장에서 공사장 인부의 생명을 보장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색이기도 했다.

춘천을 떠나오는 경수에게 쥐어진 마지막 명숙의 사진 속 명숙도 주황색 옷을 입고 있었다.

주황색이라는 보호색 뒤편에 숨겨진 집착이라는 따스함과는 거리가 먼 욕망이 소름끼치듯 무서웠다.

춘천을 떠나오면서 경수의 선배가 잠시 언급했던 말이 있었다. “경수야, 너 사람한테 사람 이상의 것 요구하지 말래?”

그의 말에 누구나 사람에게는 괴물의 모습이 내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수라는 괴물을 만난 명숙이 그 괴물의 모습에 반응을 했던 것이었고.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춘천을 떠나는 경수에게 또 다른 여인이 그에게 다가온다.

흥미롭게도 홍상수 감독은 색을 많이 이용했다는 인식을 많이 받았다. 이번에는 초록색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제는 경수의 보호색을 완전히 무방비로 만들어버리는 “GO”라는 초록색 옷을 입은 선영이 등장한다.

이때 경수가 읽고 있는 책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홍상수 감독의 세심하게 꼬집어내는 스타일이라면 단순 소품 하나도 무작위로 선정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을 읽고 있는 경수의 모습은 세상과는 동떨어진 인물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이라는 그가 탐독하는 책의 저자인 스콧 니어링은 평화주의자 답게 도시보다는 시골의 삶을 택한 사람이었다.

그는 솔직하게 사회에 대해 말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리와 권력을 포기하고 시골에서 일생을 살았던 인물인데,

그에 대한 자서전을 읽으며 서울로 향하고 있는 경수를 보는 것이 매우 아이러닉하다고 느꼈다.


괴물이 되지 않고자 계속해서 괴물이 되지 말자고 하는 경수에게 서울행은 결국 괴물의 삶으로 돌아가는 급행열차였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한 돌파구로 선영이 등장하고 결국 선영을 따라 경주에서 내린다.

경주에서 있으면서 혼자 고기와 술을 먹는 경수의 모습을 보는 경주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적대적이었다.

마치 있어서는 안되는 곳에 온 존재와도 같았다. 선영의 집을 찾아갔을 때에도 그 가족은 경수에게 이유없는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선영과 우여곡절 끝에 만나지만, 선영과 그는 이미 과거의 연이 있는 인물이었다.

다만 그 선영과 하룻밤의 정사 후 떠나가는 선영이 남긴 메시지는 어디까지나

그저 누구에게나 있는 사람과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듯 했다.

한순간의 유희가 세상이 하나가 된 느낌이라는 것으로 괴물에게 세상과 하나되었다는 착각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괴물은 괴물이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선영과의 하룻밤에서도 경수는 끊임없이

각종 체위에 대해 언급하며 명숙의 모습을 선영에게서 찾으려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가 세상과 하나된 착각에 선영에게 먼저 사랑한다라는 말을 말한다.

우습게도 이 관계에서 경수는 스스로가 뱀이 되기를 선택한 듯 싶었다.

특히 선영이 하룻밤의 정사 후 호텔방을 나서면서 들리는 무언가가 굴러가는듯한 소리는

마치 춘천의 회전문을 다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회상시켰다.

경수와 선영이 술과 고기를 먹다가 경수의 실수로 유리잔을 깨뜨렸을 때 뒷수습을 경수가 혼자 다 하며

선영은 조심하라는 말만 육성으로 들리는 것처럼, 모든 것에 대한 뒷수습은 경수가 홀로 하고 있었다.

특히 점집에 가서 더 이상 선영에게나 경수에게나 미래가 없음에 대한 점궤는 이 인연에 대한 끝도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어찌보면 경수가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을 받아들이면서,

그 남편에게 고발의 편지를 쓰면서 다시 본연의 괴물로서의 ‘감’이 다시 살아났던 것일까.

결국 이 영화의 끝은 춘천의 회전문과 뱀의 이야기처럼,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치고 천둥이 치는 와중에 선영을 떠나가는 경수의 모습을 끝으로 막이 내린다.

 

<생활의 발견>이라는 제목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비수와도 같은 감독의 표현법에 아플법도 하건만,

누구나 가지고 있고 결국에는 괴물은 괴물로서 남아있다라는 그 존재가 레테의 강을 건너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잊어버렸다가

다시 그 회전문 앞에 괴물로서의 ‘감’을 다시 찾는 모습은 영어 제목만큼이나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괴물’에 모습을 다시 돌이켜 볼 수 있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경수는 상실을 겪어도 그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 처럼, 욕을 내뱉고 또 다른 욕망의 해소를 향해 달려간다.

아마 서울행으로 올라가더라도 그는 끊임없이 어딘가에 또 내려서 또 다른 세상과 연결해줄 수 있는 고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토록 세상과의 ‘소통’에 목을 메는 것 처럼. 나도 뱀과 같은 존재. 내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나 스스로의 답은 가지고 있다.

다만 내 ‘감’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살아있고 그 ‘감’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 듯하니 계속되는 이 고리를 쉽게 끊을 수가 없을뿐.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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