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사진출처 - 꾼들 페이스북 페이지>


본 리뷰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비전문적인 리뷰입니다.


날씨도 쌀쌀해지고 하니 따뜻한 연극이 필요하다고 느꼈을까.

꾼들 회장의 말처럼 '꾼들 공연에는 경찰과 도둑이 꼭 나온다더라"라는 속설을 깨고자

다른 공연을 선보인다길래 다녀왔다.


"니...밥 마이 묵으래이..."

"아빠, 내 오면 축구화 사줘. 새거?"


이 대사 두줄만 놓고 봤을 떄의 첫 인상은

내 스타일의 공연이 아닐 것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또한 가족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진부할 수도 있고

다소 신파적일 것 같은 주요 대사들이 포스터에 삽입되었다보니

크게 기대가 안되는 부분들이 었다.

특히 가족이라는 소재로 12년간 촬영된 영화 보이후드를 보고 난 직후여서일까.

"또 가족에 관한 내용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라는 제목은 답답했다.

눈먼 사람에게 길을 묻는 것만큼 바보같은 질문이 있을까?


공연 보러 가기 전부터 이래 저래 복잡한 마음을 안고 들어갔다.



월요일 첫날 첫 공연을 보고 왔다.

화요일이나 수요일은 시간이 안되서 못보나 싶었는데

뒤늦게 월요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보게 되었다.



앞에서 보러온 사람들에게 포스터를 한장씩 나누어 주었는데

포스터를 다 펼쳐진 상태에서 나눠줬다보니

관람객 입장에서는 포스터를 왜 나눠줄까 하는 의문을 받을 법했다.

실제로 뒷자리에 앉은 관객들은 "이거 방문앞에 붙여놓으면 되는건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니 포스터를 접어서 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접어서 펼쳐보면 그나마 브로셔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공연을 다 보고 나오면서 보니까 포스터를 돌돌 말아서 놨더라.

조금은 아쉽다.



무대는 디테일에 충실했다.

나무에 메달린 낙엽들에 옛날 집, 평상 그리고 그네.


집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 옆에 누군가의 졸업사진이 있었는데

보면서 드는 생각이 연출이 이문원교수님의 팬인가 싶었다.

교수님도 지난번 <민중의 적 : 2014>에서 교수님만의 작은 시그니처로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을 넣었는데

이것도 그것을 보고 넣은 것인가 싶었다.


<사진 출처 - 제22회 한동대학교 젊은연극제 출품작 집으로 페이스북 페이지>


극 말미에 세트 벽 뒤로 무대 앞과는 다른 공간을 투영한 것도

<집으로>의 느낌과 비슷했다.


<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는 희극의 모습을 한 비극이라고 생각되었다.


소아암을 앓고 있는 선호,

그리고 어릴때 소아마비를 앓았는지 팔과 다리가 불편한 엄마 김붙들,

그리고 어릴 때 사고로 머리를 다쳐 글도 모르는 어눌한 아빠 이출식,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있고 불행한 이 가족을 보면서

답답함이 제일 컸다.


첫째는 목욕하다가 물에 빠져 죽고,

둘째는 암에 걸려 수술을 하더라도 생존의 가능성도 희박하고

그렇다고 해서 수술할 비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삶의 낙이라고는 없는 이 가정에도 낙은 있었다.


너무 바보 같아서 그렇지.

바보 아빠는 손톱깎아주고 발톱깎아주고 업어주고.

욕쟁이 엄마는 온갖 욕은 얻어먹으면서도 선호만큼은 지켜주려고 하는 마음.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과 영역 내에서 최대한으로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큰엄마도 큰아빠도 이모도 악하다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것이

각자 처자식이 있으니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한 최대한으로 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은 이장과 목사겠다.


이장은 모든 것에 대한 공치사를 스스로에게 돌리고

또 그것도 모자라 공금을 스스로에게 돌리고자 노력하고 있고

목사는 말씀을 보자 기도하자 하지만 기도의 방향성이

사람이 아니라 그 외의 것을 향해 있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볼 수 있겠다.


오죽 하면 목사의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지 않았겠나.


"쉿! 방금 어디서 개소리가 들리지 않았나요?"



극 끝에서 가족이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는데

의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아빠가 기도할 때마다 돈을 넣는데

아버지의 액자가 탁하고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아들의 모습을 아버지가 죽어서도 보기 싫은가 싶었다.


극 끝에 아버지가 약을 먹고 죽는 장면을 보면서

"자...어떻게 이제 극을 마무리 할까?"라고 생각이 드는순간

하우스 불이 켜졌다.


뭐지.

당황하기도 했고 뭔가 찝찝한 마무리.


내가 극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나?


나에게는 사투리도 잘 알아듣기 어렵거니와

욕이 계속 오고가는게 그렇게 웃긴 상황도 아니라서.

내 웃음 포인트와는 좀 달랐고,

옆에 앉은 여자 관객들이 훌쩍 거리며 보는 것과 다르게

내가 워낙 눈물이 없다보니

감동보다 답답함과 짜증이 더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래도 극 중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꼽자면

'아픔'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수술받으러 가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농약을 먹었다는 아빠.

손톱을 깎아주다 너무 바짝 깎아서 아픔을 느낀 아들.

그리고 큰엄마에게 맞던 엄마.


아픔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래도 그 아픔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그나마 괴물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겠나.


사랑은 필연적으로 아픔을 동반한다.

아마 그 연결고리를 보여주고자 함이 아닐까.


많이 아프고 많이 사랑하자.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극 중 선호가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하는 대사

"아빠, 내 오면 축구화 사줘. 새거?"

어쩌면 앞에서 계속해서 감동을 주다가

펑! 터뜨려줘야 되는 대사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냥 흘러가버린 것만 같았다.


음향 실수가 몇번 있었긴 한데

전화를 받았는데 뒤에서 계속 희미하게 전화벨이 울려

소오름


관객 수가 적어서인지

이장 방송 때와 막과 막 사이 음악 음향이 너무 커서 귀가 아플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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