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Λ] "선인장"

2015. 12. 29. 19:01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을 종종 보고는 한다.

서울대생이 아닌 친구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은 한다.

다만 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글로서 너무 잘 녹아들어가있어서

때로는 감탄을 하면서 보고는 한다.


그 중에 최근에 한 글을 보았다.




https://www.facebook.com/SNUBamboo/posts/966109263480706

공부를 마치고 자취방에 돌아오는 길에 선인장을 하나 샀다.

딱히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화려한 꽃들에 밀려 판매대 구석으로 쫓겨난

그들의 신세가 마치 내 처지 같아서였다.


모의고사 시험지와 아직 볼 기회조차 없었던

면접대비용 수험서가 어지러이 놓인 책상에, 선인장을 놓아두었다.

제 몸 하나 간수 못 하는 놈이 식물을 키워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어차피 선인장은 물을 많이 안 줘도 되니까 상관없을 것이다.

삼일 뒤면 새해가 밝고, 이로서 시험 준비는 3년째를 맞이한다.

자신감을 잃지 말자고 늘 애써 다짐한다.


하지만 자신감을 잃지 말자는 목표와 숨이 막혀올 정도로 답답하고

외로운 내 삶은 괴리가 너무 커 보인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도 모난 구석없는 사랑받는 학생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줄곧 공부를 잘 했고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듬뿍 받고 자랐다.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친구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래도 내일로 여행 함께 갈 수 있는 친구들도 몇 명있다.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대학 입학 후의 생활은 내 생각만큼 설레고 아름답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남들 살아가는 만큼. 딱 그 만큼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대학 1,2학년의 모든 것에 어설펐던 생활이 부끄럽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때의 내 눈과 가슴은 아주 작은 것이었으나,

그래도 최대한 보고 담으려고 노력했으니, 괜찮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게 뛰어든 시험에서 나는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있지 않다.

그리고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수험생활을 오래도 지속하고 있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 믿음이 진짜인지는 믿지 못한다.

장기화되는 수험생활과 더불어 나 자신도 점점 모난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꾸미지를 못하니 사람을 만나기가 싫다. 사람을 점점 안 만나니 말이 없어진다.

독서실이나 도서관에서 조금만 소음이 들려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일쑤다.

내 공부가 안 되는 이유와 불합격의 이유가 다 그 소리 때문인 것 마냥 저주한다.


사실은 사소한 것 하나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작아진 내 마음에 더 밉다.

나는 끊임없이 내 슬픈 내면 속으로 침잠한다.

화려했던 꽃들은 온데간데 없고 내 몸에는 가시만 돋혀 있다.

선인장은 사막의 건조하고 험난한 환경을 견디다보니

날카로운 가시 투성이의 식물이 되었다고 한다.

사막에서 예쁜 식물은 주변 동물과 곤충의 시선을 끌고,

가시없는 식물은 곧잘 식후의 간식으로 먹히고 만다.


선인장의 목표는 사막에서의 생존이고,

생존을 위해서 흉측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부를 하러 학교를 가는 길에 꽃집 아저씨께 물었다.


"저.. 선인장도 꽃을 피우나요?"


그날 들어온 백합 송이를 손질 하시던 주인 아저씨가 대답했다.


"피우기 어렵죠.

오히려 물을 주고 신경을 쓸수록 꽃을 안 피웁니다. 아주 독한 녀석들이죠.

하지만요, 한번 피고 나면 여기 있는 장미나 백합들보다 훨씬 아름답답니다."




이 글을 보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선인장 노래가 생각났다.


그 노래의 도입부에서


햇볕이 잘 드는 그 어느 곳이든

잘 놓아두고서 한 달에 한번만

잊지 말아줘, 물은 모자란 듯 하게만 주고


차가운 모습에 무심해 보이고

가시가 돋아서 어둡게 보여도

걱정하지마, 이내 예쁜 꽃을 피울 테니까


언제 꽃을 피울 수 있으려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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