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향수를 바르면 손목에 바르고

귀 뒤와 목에 바르곤 했다.

왜 그쪽에 바르는지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맥박이 뛰는 곳이라서,

맥박 뛰는 것에 따라

향이 더욱 잘 퍼진다는 근거없는 이야기를 듣고

몇년 째 그렇게 향수를 뿌리고는 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향으로 기억되고 싶다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 좋은 향이 좋아서 향수를 그렇게 샀었다.

여름에는 시트러스 풍의 시원한 느낌의 가벼운 향수.

가을과 겨울에는 많이 무겁지는 않지만 달달하게 느껴지는 향수.


매번 똑같은 향수가 나오면 좋겠지만,

어느 향수는 몇 해를 가지 못하고 단종되어버리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새로운 향을 찾지 못하고

지난 계절의 향에 머물러 있는 것이 벌써 몇년 째.


그러던 가을 향수의 빈자리에

평소 누군가의 향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심했던 나에게

발목 아래부터 올라오는 듯한 그녀의 향은


넓은 방안 가득,

오랜 기간 동안 가을의 향이 깃들지 못한

나의 옷깃에도 진하게 베었다.


차마 지우지 못한 그 사람의 향이 오래 남아서

내게 그 향을 계속해서 찾고 싶게 만들었다.


장 그루누이가 그랬을 것이다.

그도 매력적인 여인의 향을 처음 만났을 때

그 향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소유해서는 그 향은 존재할 수가 없다.

소유하지 않았기에 그 향이 존재 할 수 있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향기가 있다"

-장 그루누이-


무취의 내가 그녀를 소유하지 않고

그녀의 향이 내게 깃들게

그녀의 향기가 나를 지배하게

오랫동안 남게 하는 것.

나의 옷깃에 머물게 하는 것.


일단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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