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대학교


<사진출처 - 꾼들 페이스북 페이지>


본 리뷰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비전문적인 리뷰입니다.


날씨도 쌀쌀해지고 하니 따뜻한 연극이 필요하다고 느꼈을까.

꾼들 회장의 말처럼 '꾼들 공연에는 경찰과 도둑이 꼭 나온다더라"라는 속설을 깨고자

다른 공연을 선보인다길래 다녀왔다.


"니...밥 마이 묵으래이..."

"아빠, 내 오면 축구화 사줘. 새거?"


이 대사 두줄만 놓고 봤을 떄의 첫 인상은

내 스타일의 공연이 아닐 것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또한 가족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진부할 수도 있고

다소 신파적일 것 같은 주요 대사들이 포스터에 삽입되었다보니

크게 기대가 안되는 부분들이 었다.

특히 가족이라는 소재로 12년간 촬영된 영화 보이후드를 보고 난 직후여서일까.

"또 가족에 관한 내용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라는 제목은 답답했다.

눈먼 사람에게 길을 묻는 것만큼 바보같은 질문이 있을까?


공연 보러 가기 전부터 이래 저래 복잡한 마음을 안고 들어갔다.



월요일 첫날 첫 공연을 보고 왔다.

화요일이나 수요일은 시간이 안되서 못보나 싶었는데

뒤늦게 월요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보게 되었다.



앞에서 보러온 사람들에게 포스터를 한장씩 나누어 주었는데

포스터를 다 펼쳐진 상태에서 나눠줬다보니

관람객 입장에서는 포스터를 왜 나눠줄까 하는 의문을 받을 법했다.

실제로 뒷자리에 앉은 관객들은 "이거 방문앞에 붙여놓으면 되는건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니 포스터를 접어서 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접어서 펼쳐보면 그나마 브로셔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공연을 다 보고 나오면서 보니까 포스터를 돌돌 말아서 놨더라.

조금은 아쉽다.



무대는 디테일에 충실했다.

나무에 메달린 낙엽들에 옛날 집, 평상 그리고 그네.


집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 옆에 누군가의 졸업사진이 있었는데

보면서 드는 생각이 연출이 이문원교수님의 팬인가 싶었다.

교수님도 지난번 <민중의 적 : 2014>에서 교수님만의 작은 시그니처로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을 넣었는데

이것도 그것을 보고 넣은 것인가 싶었다.


<사진 출처 - 제22회 한동대학교 젊은연극제 출품작 집으로 페이스북 페이지>


극 말미에 세트 벽 뒤로 무대 앞과는 다른 공간을 투영한 것도

<집으로>의 느낌과 비슷했다.


<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는 희극의 모습을 한 비극이라고 생각되었다.


소아암을 앓고 있는 선호,

그리고 어릴때 소아마비를 앓았는지 팔과 다리가 불편한 엄마 김붙들,

그리고 어릴 때 사고로 머리를 다쳐 글도 모르는 어눌한 아빠 이출식,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있고 불행한 이 가족을 보면서

답답함이 제일 컸다.


첫째는 목욕하다가 물에 빠져 죽고,

둘째는 암에 걸려 수술을 하더라도 생존의 가능성도 희박하고

그렇다고 해서 수술할 비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삶의 낙이라고는 없는 이 가정에도 낙은 있었다.


너무 바보 같아서 그렇지.

바보 아빠는 손톱깎아주고 발톱깎아주고 업어주고.

욕쟁이 엄마는 온갖 욕은 얻어먹으면서도 선호만큼은 지켜주려고 하는 마음.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과 영역 내에서 최대한으로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큰엄마도 큰아빠도 이모도 악하다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것이

각자 처자식이 있으니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한 최대한으로 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은 이장과 목사겠다.


이장은 모든 것에 대한 공치사를 스스로에게 돌리고

또 그것도 모자라 공금을 스스로에게 돌리고자 노력하고 있고

목사는 말씀을 보자 기도하자 하지만 기도의 방향성이

사람이 아니라 그 외의 것을 향해 있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볼 수 있겠다.


오죽 하면 목사의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지 않았겠나.


"쉿! 방금 어디서 개소리가 들리지 않았나요?"



극 끝에서 가족이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는데

의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아빠가 기도할 때마다 돈을 넣는데

아버지의 액자가 탁하고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아들의 모습을 아버지가 죽어서도 보기 싫은가 싶었다.


극 끝에 아버지가 약을 먹고 죽는 장면을 보면서

"자...어떻게 이제 극을 마무리 할까?"라고 생각이 드는순간

하우스 불이 켜졌다.


뭐지.

당황하기도 했고 뭔가 찝찝한 마무리.


내가 극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나?


나에게는 사투리도 잘 알아듣기 어렵거니와

욕이 계속 오고가는게 그렇게 웃긴 상황도 아니라서.

내 웃음 포인트와는 좀 달랐고,

옆에 앉은 여자 관객들이 훌쩍 거리며 보는 것과 다르게

내가 워낙 눈물이 없다보니

감동보다 답답함과 짜증이 더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래도 극 중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꼽자면

'아픔'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수술받으러 가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농약을 먹었다는 아빠.

손톱을 깎아주다 너무 바짝 깎아서 아픔을 느낀 아들.

그리고 큰엄마에게 맞던 엄마.


아픔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래도 그 아픔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그나마 괴물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겠나.


사랑은 필연적으로 아픔을 동반한다.

아마 그 연결고리를 보여주고자 함이 아닐까.


많이 아프고 많이 사랑하자.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극 중 선호가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하는 대사

"아빠, 내 오면 축구화 사줘. 새거?"

어쩌면 앞에서 계속해서 감동을 주다가

펑! 터뜨려줘야 되는 대사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냥 흘러가버린 것만 같았다.


음향 실수가 몇번 있었긴 한데

전화를 받았는데 뒤에서 계속 희미하게 전화벨이 울려

소오름


관객 수가 적어서인지

이장 방송 때와 막과 막 사이 음악 음향이 너무 커서 귀가 아플 정도



전날에 우연히 학교에 밤에 들어가

학관 앞을 지나가던 중에

명예제도위원회 사람들이 학관 입구 쪽에

HONOR WEEK를 시작하며

저렇게 분필로 일일히 그림을 그리는 모습들을 보았다.


순결서약식을 매번 진행했던 사람으로서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한동의 옛 모습 중 하나인 순결서약식과 더불어

명예제도를 그래도 꾸준히 끌어나가고자 하는 노력들을 보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밤이 되면 쌀쌀한 날씨가 되어

추운 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바닥에 꿋꿋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후배들을 보자니

도대체 저 명예제도가 무엇이건데 저렇게 하나 싶었다.

적어도 내가 지금 보는 한동에서는

명예제도는 그냥 입학식의 일개 행사일 뿐

실체가 없는 마치 저 그림자와도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어제는 그냥 이 사진을 찍고

감성팔이라도 해볼까 했는데

오늘 새벽 4시에 눈이 떠져서

페북에 들어갔다가 화가 나서

다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일찍 일어나 과제들도 미리 하고 했지만.



한동대대신전해dream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누군가가 비꼬듯이 올렸던데

참...나 같으면 명제위를 수소문해서 연락을 했으면 했지

참 못된 심보다 싶었다.



물론 뒤처리를 깔끔하게 안한 명제위의 잘못도 있지만,

그것에 대한 대처를 저런 식으로 한

신고 정신 투철한 학생도 문제


학교가 어떻게 될런지


<사진출처 : C바이러스 페이스북>


<2014.10.03 19시 공연>


주말 사이에 서울에 올라가

<민중의 적:2014>를 보러갔다.

보러 가기 전에 내심 걱정했던 부분은

'밀양 송전탑'이라는 주제는 1년이 넘도록 진전이 없었기에

과연 시의성이 적절한가 싶기도 했다.

또한 '세월호'로 인해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마음의 짐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극단 C바이러스의 이번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연출이신 이문원교수님의 이전 작품들을 볼 때

다소 의외라는 생각을 했었다.


현재 안식년을 가지고 계신 교수님은

이번 작품 이전에 한동대학교에서 <레미제라블 4.19>로

그리고 <집으로>를 보며 별개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보았다.


특히 작년부터 시작해서 그때 당시 한동대학교가 처한 상황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을

작품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혁명'을 노래한 <레미제라블 4:19>이후

"난 집으로 가고 싶어..집으로"라고 말하는 <집으로>를 보며

더 이상의 혁명도 노래도 없는 오로지 '하늘바라기'가 되나 싶었다.


처음 <민중의 적:2014>의 제작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교수님이다" 싶을 정도로

도전적인 주제로 작품을 만드시는구나 생각했다.


<사진출처 : C바이러스 페이스북>


헨릭 입센의 <민중의 적>의 형태로

밀양의 옷을 입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싶었다.


연극을 보고나서 이 리뷰를 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다른 작품도 아닌 교수님의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워낙 어려웠기도 하고 부족한 내가 리뷰를 씀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연극에 대해 감상하는 것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 젊은 날에 연극을 보고

느낀점을 기록하는 것의 소중함을 잘 알기에

내 이기심의 승리로 본 리뷰를 작성한다.


<사진출처 : C바이러스 페이스북>


C바이러스의 구성은 흥미롭다.

부부가 함께하는 극단.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끊임없이 새로운 배우들이 오고 가고

또 기존의 배우들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주고

마치 자녀를 키우는 것처럼

극단을 키워가시는 두분을 보면서

C바이러스에 대한 애정을 짐작해볼 수 있다.

<사진출처 : C바이러스 페이스북>


이번 작품을 보러가면서

기대가 되었던 점은

졸업생 두분이

그것도 2007년에 <멕베스: 돌이킬 수 없는>을 끝으로

보지 못했던 선배를 무대위에서 다시 볼 수 있어서

뜻 깊은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민중의 적:2014>이 하는 '천공의 성 소극장'은

혜화역 4번출구로 나와서

베스킨라빈스 쪽 골목으로 향하다가 보면

찾을 수 있었다.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배우들이 얼마 안 있어서 나와서

무대안에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일리아드>때도 그랬고,

반갑다는 느낌이 크다.


개인 기록용 티켓 인증 사진


<사진출처 : C바이러스 페이스북>


<민중의적:2014>를 보면서 소극장이지만

소극장에 있기 아까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학교에서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송전탑'이라는 소재는 새내기 학생들에게 생소할지는 몰라도

몇년 전에 잠깐 '반짝' 했던 적이 있다.



이렇게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한동신문 [170호 송전탑 특집] 흥해 분기 송전탑 건설, 한동의 반응을 보다

학내 학보사로도 기사가 났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고

학교 주변에는 송전탑들이 들어서있다.


그렇기에 결코 우리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서

<민중의적:2014>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사진출처 : C바이러스 페이스북>


<민중의적:2014>는 화려한 무대 장치가 있던 것도 아니였고

오히려 단순했지만 정말 꽉찬 무대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그리드로 무대가 가득 채워지면서

배우들이 인터넷의 댓글들을 표현하는 장면 또한

"역시..."라는 감탄사를 자아냈다.


배우들의 캐릭터 한명한명이

정말 살아있었고

말을 했고 움직였다.


특히 한 장면에서 배우들이 관객석에 앉아

'성도일'에게 온갖 욕을 하는 장면에서는

그토록 불편한 관객석이 아닐수가 없었다.


관객석에 섞여있는 배우들의 입으로


"내려오라고"

"뭔 소리야"


우리의 생각들이 나오고 있었고

우리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앉아있는 그 자리가 가시방석 같았다.


또한 언론이 자본주의에 넘어가고

결국 진실을 은폐하는 것에서는 답답함과 안타까움

오히려 무기력함을 느꼈다.

언론에 대해 별다른 희망을 가지고 있지않은

나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전에 페이스북에


한동대학교에 총학생회는 필요하지 않다.

제대로 작동되는 언론이 필요할 뿐이다.


라고 썼다가 급히 비공개로 바꿨다.

내 생각에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거니와

내 생각은 내 생각으로만 존재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현재 총학생회를 하고 있는 몇몇 페이스북 친구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매우 극단적인 생각이기도 헀으니까.

언론은 눈이지 결코 손과 발이 되지 못하니까.


현재의 한동대학교에는 제대로된 언론이 없다.

그나마 최근에 들어서는 '한동신문사'가 그나마

조금 괜찮은 기사들을 쓰고 있지,

이전에는 정말 별볼일 없었다.


또한, 소위 '찌라시'가 불리우는 '당나귀'의 존재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사진출처 : C바이러스 페이스북>


잠시, 이야기의 흐름이 한동대학교로 갔지만

다시 <민중의적:2014>로 돌아와서..


<민중의적:2014>의 마지막 장면 중에

'침묵'의 장면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무서운 '침묵'


무너져가기 직전의 '침묵'은 너무나도 공포스러웠고 길었다.


'성도일' 캐릭터를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조심해야 되는 사람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상처 입은 맹수'는 건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말하는 자가 곧 적이 된다는 것을.

침묵하는 자는 아군이라는 것을.


그리고 결국 극의 끝부분에서

'하늘을 보라'며 할매는 말한다.


답을 원하는 시대

답을 갈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답은 오로지 '하늘을 보라' 밖에 없는 것일까.




이 극이 단 몇일만으로 무대 위에 올랐다가 사라지기에는 아까운 것 같다.

물론 이 리뷰도 너무나도 부족하고

<민중의적:2014>를 보며 내가 느꼈던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도

너무나도 부족했다.


아쉽다...


[Λ] "웃어라 무덤아"

2014. 10. 1. 02:37



2014.09.30

9월의 마지막날을 연극으로 마무리를 했다.

9월을 보내면서 본 연극은 가벼울법도 하건만

오히려 가벼움 보다는 중후한 세월의 무게와

고독이라는 길을 보여주었다.



#STAGE#


무대는 크게 특이한 것은 없었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밋밋하리만큼 심플했다.

배우들 대부분은 전면의 의자와

무대 오른쪽의 아랫쪽을 사용하면서

다소 단조로운 무대 사용을 보였다.


특히 무대 가운데에 의자를 배치한 것이

너무 '정직했다'라는 느낌이 컸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의자를 의자 이상의 

프롭으로 사용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극 결말 부분의 꽃을 꽂는 부분 외에는

크게 새로운 부분이 없었다.


특히 무대 좌측의 빨래가 걸린 빨랫줄은

오히려 배우들의 등퇴장에 걸리적거리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무대의 전환 시 가운데에 있는 무대를 옴겨서

감옥으로 순식간에 전환한 것은

일단 칭찬하고 싶다.


맨 앞에서 극을 본 바,

나무판 전체를 어둠 속에서 옴기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다만 유치장이라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조명의 시도를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유치장의 분위기를 한층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배경외에는 유치장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 부족한 느낌을 조명으로 보충해주면 어떻겠나 싶었다.


또한 유치장의 창살을 붙잡고 있는 배우

그리고 대부분 무대 좌측으로 앉아있는 배우

그리고 가운데에 밀집해있는 배우

지나치게 운집해있는 배우들로 인해

소녀가 잠시 등장했을 때 소녀에 대한 관찰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앞에 앉아서 일지도 모른다)


#ACTING#


배우들이 대부분 앉아있거나

그냥 서서 대사를 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최소한의 움직임 그리고 할머니 특유의 몸짓을 연기하던

할머니 역할의 배우가 더 생동감있게 느껴졌다.


'강옥자' 캐릭터 연기하는 친구가

언제나오나 싶을 정도로 계속 기다려졌다.


'정말자'를 연기한 배우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느낌이었다.

울고 있으나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어서

그래서 더 극의 끝에가서는 더 기괴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특히 '강옥자'의 죽음 이후 100만원을 놓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본연의 모습이 하나둘씩 나오는 장면은

내게 마치 폭행당하는 느낌을 주었다.



특히 이전에 니콜 키드먼이 출연했던 <Dogville>처럼

배우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분 선 너머로

관객들에게 보이는 많은 폭행과 부조리가 있었음을 보고

엄청난 스트레스였는데

이 작품 또한 100만원을 놓고 벌여지는

수 많은 인간들의 추악함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탁기봉'캐릭터는 남자라면 아마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음흉' '음란' 수위높은 상상자극 대사들을 하는 것에 있어서

조금 더 뻔뻔하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좀 남는듯 싶었다.

아마도 '탁기봉'캐릭터를 능숙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나서 아쉬움이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배준후 평론가)


'순경' 역시 '똘똘이'와 '딸딸딸'을 자신이 말하면서도

순진한 듯이 말했다면 더 웃겼을 것 같지만,

자신이 말하면서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다는 느낌에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 전반적으로 사투리를 많이 썼는데

어떤 사람은 사투리를 쓰고, 어떤 사람은 서울말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사투리를 듣는 것이 별로 익숙하지 않아서.

사투리에 100% 이입하지 못했다.



브로셔의 담당교수의 글을 보며

단연 눈에 들어오는

'고독'이라는 키워드


우리의 삶 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만큼은

그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뜨거운 조명 아래의 고독한 시간을 이겨낸 배우들과

동분서주하며 극을 준비했을 스태프들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여행길'을 시작하는

'고독'의 참된 의미를 아는 청춘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독'안에서도 웃을 수 있는 날이 그대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찾아오기를.



벌써 7년전 했던 연극을 회상하면서 글을 남기려니 

참 기분이 묘한 것 같다.

 

한동대학교 제15회 젊은연극제 참가작 멕베스:돌이킬수없는, 

이 연극으로 인해 나의 삶 전체 방향이 다 바뀌었다.


처음에 생명과학부를 가려던 나였는데, 

1학년때 기획팀이라는 글에 끌려

나도 모르게 지원하고 한 학기,

그리고 방학까지 세종대학교 극장에서 보냈던 시간들.

그때 정말 미쳐있었나 싶다.

 

학관 104호에서 연습하던 때, 

매 시간마다 찾아가서 연습하는 것을 구경하고는 했다.

그때 왠만한 배우들 대사는

정말 다 외웠던 것 같다.

 

꼭 할일이 있어서 간 것은 아니었고,

뒷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과제를 하더라도 

그냥 뒤에서 앉아서 가끔 구경하는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지금은 기획팀이 의무적으로

1주일에 몇번으로 연습참여를 

하도록 하는 것을 보면

예전과는 많이 다른 것을 느낀다.

 

그때 기획팀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형 그리고 누나들이 시키는 것만 했고, 

그래도 이것저것 아이디어들을 내고

그 아이디어들이 채택되었을때의 즐거움이

제일 컸던 것 같다.



지금의 학관 104호는 많이 바뀌었지만,

옛날에는 104호가 이랬었다.

이곳에서 수업도 햇었고,

예전에 여기서 드라마 작법 기초 과목까지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이중문과 검은 벽은 없고

흰벽이 가장 크게 다르다.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이때의 의자는 나무의자였다.

지금처럼 푹신한 의자는 아니었다.

공연 때 앞무대를 늘리기 위해

맨 앞 의자 한두줄은 볼트를 풀어서 밖으로 날랐던 기억도 난다.

엄청 무거웠다. 

 


교수님께서 사진 과제를 내주셨던 때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지금보면 상당히 낯이 익은 모습이다.

마치 지난번 한여름밤의 꿈 때 마리오네트 장면 같지 않은가..?

 


그때 마녀와 마남(?) 분장이다.

그때 분장이 영롱이였는데,

참 멋지게 잘 해주었다.

이떄 영롱이를 처음 알게 되었구나. 그렇고보니.



무대는 정말 멋졌다. 뒤에 백드랍

그리고 바닥에는 마법진을 연상시키는 페인팅까지.

멕베스 연극의 시작은 배우들이 나와

무대인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을 하였다.

무대인사를 하고 리와인드를 하며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식이었다.


마치 영화 메멘토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때 당시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도 매우 생소한 방식의 연극이였다.



많은 장면들 중에 기억에 남는 장면,

멕베스 부인이 피에 물든 손을 보며 씻으려고 하는 장면.



마녀들이 멕베스에게 힘을 불어넣고 매혹하는 장면.

과연 멕베스는 자신의 의지대로 뱅코우와 덩컨왕을 죽인것일까.



마녀들의 움직임과 조명 그리고 멕베스의 표정

모든 것이 정말 멋졌던 부분이었다.




벌써 7년전 작품이 되었다.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공연계의 첫발을 내딛게 해주었던 작품이다.

학교에 돌아와 연극개론 수업 때 그때 했던 공연의 영상이 남아있어

수업 자료로 쓰이는 것을 보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공연은 그 공연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지만,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에게,

그리고 공연이 끝난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것에서

진정한 끝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공연은 막이 내려도 항상 현재 진행형인 것 같다.

 

끝으로.

못찾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렵사리 구할 수 있었다.

 

 

한동대학교 제15회 젊은연극제 참가작 멕베스:돌이킬수없는 홍보영상






<티치포올 코리아>

한동대학교 학생들이라면,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졸업생이 있다.

최유강 선배다.


자랑스럽나?


나는 별로.

시대의 흐름을 보는 안목은 좀 뛰어난 것 같다.

교육 시장,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장할 시장이다.


다만 그 방식과 효과에 대해서는 별로.


미국에서 껍데기를 가져와서

그 껍데기에에 한글로 "한국꺼!"라고 써놓고

변화를 꾀한다는 것인데, 글쎄.


난 별로 변화가 찾아 올 것 같지도 않고,

지금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출처 : 티치포올 코리아 홈페이지>


인턴을 모집한단다.



<출처 : 티치포올 코리아 홈페이지>


여름 인턴은

자원봉사와 현장학습의 개념이므로

별도의 급여는 없습니다


그럼 자원봉사자 모집이라고 해야지.

왜 인턴이라고 쓰는가.


제공사항에 명시되어 있는

티치포올 코리아 여름 인턴십 수료증을 위해서는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모집을 당하고

인턴으로 일해야 한다.


내가 이 모집글에서 받아들이는 바는 이러하다.


너희들은 스펙이 필요해.

내가 그 인턴 스펙 줄께.

너희들의 노동력을 줘.



<출처 : 티치포올 코리아 홈페이지>


혹시나

<티치포올 코리아>의

자원봉사자 모집글을 보았다.



<출처 : 티치포올 코리아 홈페이지>


다를 것이 없다.


자원봉사는 말그대로 '봉사'이다.

인턴은 인턴이다. '봉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인턴'과 '봉사자'가 하는

업무 내용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출처 : 티치포올 코리아 홈페이지>


인턴의 상세 업무 내용이다.

<티치포올 코리아>내의 큰 프로젝트 전반적으로

기획 및 운영

그리고 개발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출처 : 티치포올 코리아 홈페이지>


봉사자의 주요 업무 내용이다.

여기도 역시 개발 및 진행이 포함된다.


프로젝트의 규모와

차지하는 비중의 차이만 있을 뿐

업무는 대체적으로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재능 나눔'이라는 이름의 절도 행위이다.


<출처 : 티치포올 코리아 홈페이지>


<티치포올 코리아>의 미션과 비전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권리의 포기를 강요하는 것인가?




서울신문 뉴스 헤드라인이다.


이 학생들이 왜 여기를 갔을까.



모두가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봉사자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스펙 한줄을 위해

봉사자인 '척'

애국자인 '척'


그리고 인턴인 '척'


이처럼 스펙에 굶주린 학생들에게

<티치포올 코리아>는

그저 떡밥만 주는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래도 난 그를 자랑스러운 선배로 봐야할까.

겉으로는 세상과는 구별되게 하려는지는 몰라도

내부적으로는 세상의 회사들과 별 다를게 없는 모습


그토록 꿈을 중요시하는 <티치포올 코리아>


꿈에 가치를 부여하기는 힘들지만,

소외받은 사람들의 꿈만큼이나,

청년들의 꿈도 중요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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